10/26/13

edition of contemporary music/ Most Beautiful Sound Next to Silence

edition of essential architecture/ Most Beautiful Space Next to Void

7/16/13

잠이 오지 않는 밤 시리즈 이

기억이 나질 않아 블로그의 옛 글을 뒤져 찾아 내었다.
이 글은 오늘밤의 시리즈 2 정도라 하면 될 것 같다.
본능이라는건 무서운 것 일수도 있지만 어찌보면 지극히 자연스러워 무서움도 모른체 지나가는 많은 것들이어라.

살다보니, 란 말이 어울리는 밤이다. 오늘은 이천십삼년 칠월 십칠일이어라.
살아가며 언어에 대한 한계를 너무도 느끼며 살아가는 날 중에 하나이어라.

경험으로 살아온 그들은 더 본능적이고 직관적이겠지.
그렇게 부딪혀온 그들은 그것이 살아가는 방식이었으며 삶의 지혜가 되었겠지.

당차다는 말이 듣기 좋다.
나이를 물으시고
혹은 거짓이라하여도
내가 잘 헤치어 나가야 할 과정이다.

앞으로도 유혹은 많을테니까.

두드려라, 그러면 열릴것이다.
너무도 식상한 하지만 영원한 스테디 명언,
머리는 뜨겁게 가슴은 차갑게

아인슈타인을 좋아한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처음 났을때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사고하고 대하기를 바란다.

황지우 선생님께서 시는 쓰는것이 아니라 찾아오는 것이라 하였다.
많은 것들이 그러하여라. 어제, 오늘 내일도

이 글도,
그러하여 그렇게 되어지는것이라.

내일은 이 글이 지극히 감성적인 글일지라도-




1/6/13

2013inspiration

아, 즐거운 나의 집으로. 마치 너희들의 금요일 오후  같은 나의 토요일 밤-

- 2013년 1월 남해, 조병수 선생님

나는 워커홀릭이 아니다.
그러나 열정에 허덕이는 사람들을 보면 나는 가슴이 앓는다.
흥건히 뛰는 열정의 눈물.
많은 댓가와 보상이 함께한다.

살아있다. 살아야 한다. 

9/5/12

삼으 으미

허무에 빠지는 건 내 탓은 아니다,

살아가며 우리가 잡고 있는 많은 것들에 의미를 찾을 수 없을 때 찾아오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누구나,

한 번 더 웃고, 한 번 더 울고,
그것이 어찌 그리 의미가 있으랴?

무엇을 쫓고 지켜야 되는 걸까,
존재의 의미,
무엇일까,

모두가 그리 살다 가니
그저 가볍게 한껏 놀다 가면 될 것을,

그리 무거울 필요가 있는가,

너무나 많은 것들을 이곳에 남기고 있는 것 같다.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인공의 것들,

하나의 건물이 덜 지어지고 하나의 예술작품이 덜 만들어진들

이 우주가 꿈쩍이나 할런지,

우리는,

나부터 이곳에 belong하지 않는 너무나 많은 것들을 남기고 있다. 

8/11/12

슬픔을 담고 사는 것

어떤  사람의 어린 시절을 잘 살피어보면 그 사람을 형성하게 된 이유가 고스란히 베어 있음을 배운다.
자의식이 완성되기 이전 pure한 자신의 역사,
무엇을 좋아하고 사람들과 어떻게 반응하며 어떤 꿈을 꾸는지 놀랍게도 많은 것이 이미 명백하게 보여지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라-

할머니와 헤어지면서 참아내야 했던 눈물,
어린 꼬마가 소리 내 펑펑 울어도 될 것을 때마다 참아 내느라 마음이 망가졌을 것이다.


잦은 이사로 전학을 다니며 헤어짐을 반복해야 했던 기억들도
그러하였고,
물리적으로 멀어지는 건 슬픔이 아니라는 거죽을 쓰고
속으로 많이도 울었다.

중학교 시절 엄마가 학교 기숙사에 찾아온 날이면
애써 태연한 듯 너스레를 떨며 무너지는 가슴을 잡았다.

중간 성인이 되어
그가 세상을 떠날 때에도
눈물 따위는 나의 이기심이니
내 감정에 복받쳐 그리워하는 것은 얕은 사랑, 배려니
즐겁게 활기차게 지내야 한다고 다짐했다. 
돌아가신 분을 진정 사랑하는 마음은 눈물이 아니라며...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도 
당연히 담담히 받아들이게 된다. 
잠재의식, 무의식 속에 병든 나를 밤마다 마주하여도
의식이 돌아오는 아침에는
이것이 인생이라며 
해탈한 자의 흉내를 내곤 한 달, 두 달
몇 년을 지낸다.

누군가 가르치지도 않았는데
참고 보이지 않는 것을 어디서 배워
병든 자가 되었다. 

5/14/12

숨말하기

국어사전에는 이미 ‘외롭게 말하다’에 해당하는 단어가 있다. 한자로는 ‘獨語하다’, 우리말로는 ‘혼잣말하다’이다. 이 단어는 듣는 사람이 없는데도 뭔가를 계속 말하는 행위를 가리키는 동사다. 하지만 내가 귀를 기울이든 기울이지 않든 뭔가를 계속 말씀하시는 부모님을 떠올리면, 그 분들은 독어하거나 혼잣말하시는 게 결코 아니다. 상대방에게 가 닿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어쨌든 계속 얘기하는 것이다. 이건 아무도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혼자서 중얼거리는 행위와는 구별되리라. 그러니 ‘그게 가 닿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계속되는 말하기’에 해당하는 단어를 따로 만드는 게 좋겠다. 내가 국어학자는 아니지만, 여기에 해당하는 단어를 ‘숨말하다’라고 짓고 싶다. ‘숨말하다’는 ‘숨쉬다’처럼 모든 사람에게 일생동안 총량이 정해진 말하기를 뜻한다. 이건 소통 이전의 생존 자체를 위한 말하기다. 식당에서 손을 들어 “여기 냉면 2인분만 주세요”라고 말하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행위다. 어떤 숨말하기는 상대방에게 가닿기도 하겠지만, 그래서 진심으로 두 사람은 소통할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숨말하기는 말하는 사람으로서는 말하지 않을 수 없어서 말하는 말하기다. 그에게는 더없이 중요한 언어들. 하지만 중요하면 중요할수록 그건 개인적인 말들이어서 듣는 사람은, 설사 가족이라고 하더라도 완전히 이해하기 어렵다. 그래서 숨말하기는 혼잣말하기보다 훨씬 더 외롭다. 그건 어떤 심연 앞에서 말하기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게 심연이기 때문에 나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으리라. 가까운 사이인데도 난 당신을 몰라요. 당신이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어요. 그러니 한 번 더 말해주세요. 그 말에 당신이 한 번 더 말하기 시작하면, 설사 그 말들을 이해하는 데에는 한 번 더 실패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당신이 한 번 더 말하고 내가 한 번 더 들을 수 있다면, 관계는 지속될 수 있으리라. 그러니 우리 사이를 유지하는 건 막힘이 없는 소통이 아니라 그저 행위들, 말하는 행위, 그리고 듣는 행위들일지도 모른다.

- 김연수 '숨말'

5/11/12

"두려움이 늘 우릴 구하죠. 하지만 인생을 살다 보면 단 한 번이라도 두려움을 느끼지 말아야 할 순간을 선택해야 하죠."

5/9/12

Again, Rilke

“It seems to me that almost all our sadnesses are moments of tension, which we feel as paralysis because we no longer hear our astonished emotions living. Because we are alone with the unfamiliar presence that has entered us; because everything we trust and are used to is for a moment taken away from us; because we stand in the midst of a transition where we cannot remain standing. That is why the sadness passes: the new presence inside us, the presence that has been added, has entered our heart, has gone into its innermost chamber and is no longer even there, - is already in our bloodstream. And we don't know what it was. We could easily be made to believe that nothing happened, and yet we have changed, as a house that a guest has entered changes. We can't say who has come, perhaps we will never know, but many signs indicate that the future enters us in this way in order to be transformed in us, long before it happens. And that is why it is so important to be solitary and attentive when one is sad: because the seemingly uneventful and motionless moment when our future steps into us is so much closer to life than that other loud and accidental point of time when it happens to us as if from outside. The quieter we are, the more patient and open we are in our sadnesses, the more deeply and serenely the new presence can enter us, and the more we can make it our own, the more it becomes our fate.”


-Rainer Maria Rilke 

5/8/12

Green sleeves

밤지새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