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8/08

stj

문화 대통령이니 비지니스맨이니 난 모른다.
사춘기시절 난 그의 노래를 듣고 가슴 설레었고 축제때 그들의 춤을 추는 오빠들은 영웅이 되었다.

그리고 15여 년이 지나서 그들이 또 돌아왔다.
무언가에 열정을 가지고 그것을 지킬 수 있는 그가 부럽다.
부, 권력, 명예에 몰두하는 사람들은 이렇게든 저렇게든 그를 포장하겠지만...

교복입고 친구들과 소리쳐 부르던 ' 난 알아요' 그립구나!

8/27/08

?

어디로?
어떻게?
언제?
왜?

8/22/08

we


..

8/20/08

11:11

이때마다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는 20살 친구의 말을 듣고 나서 부터는 11:11가 되면 나도 모르게 멈칫하는 버릇이 생겼다. 
사실은 딱 한번 11:11이 통했던 적이 있긴 있었다. 그때는 정말 기적 같았는데, 그 이후론 생각처럼 그 기적이 일어나주질 않았다. 

방금 이 순간도 멈칫하는 나를 보고 피식 웃게되었다. 
11:11이 우습다는걸 알면서도 그때는 간절히 소망하는 열정이라도 있었겠지. 그래서 더 열심히 했겠고 그래서 기적처럼 그 소망이 이루어졌겠지.

저 정말이지 간절해요. 이루어 주세요. 
기도 들어주세요. 
네? 

-ing


Inspiration is for amateur, the rest of us just get to work.
- chuck close

8/17/08

천당과 지옥은 없다

The optimist says, " The glass is half full."
The pessimist says, " The glass is half empty."
The rationalist says, " This glass is twice as big as it needs to be. 

어떤 상황을 천당과 지옥으로 만드는 건 태도이다.
살아가면서 느끼는 슬픔, 기쁨 노여움들은 단지 하나의 태도에 불과하지 결코 그 상황을 객관적으로 판단하는 잣대가 되지 못한다. 그러면 그것들은 무지한 인간의 한낮 불필요한 에너지 소모? 

나는 행복한 합리주의 자이다.
어려운 일은 합리주의적 태도로 그 외의 일들은 긍정주의적 사고로 대처하며 살아갈 수 있다면 진정한 행복으로의 자유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른 하나를 알기 위해서는 반대편의 것을 잘 이해해야 하듯 슬픔이 없이는 기쁨도 알 수 없다는 상대적 사고로는 비논리적이지만 말이다. 
이 논리를 증명하는 이야기로 스토아 학파를 들을 수 있다. 스토아 학파는 쾌락주의를 비판하며 욕망을 품음으로 오는 불행을 피하고자 섹스나 마약 같은 종류의 최고조의 행복은 희생되어야 한다고 했다(맛보지 말아야 한다). 그들은 오로지 이성적으로만 판단하며 절대 욕망이나 열정 때문에 액션을 취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그들은 자신을 그런 불행으로 부터 구출한 진정한 행복가라 칭하지만, 최고의 쾌락을 경험해 보지 않았다면 결국은 불행한 것이 아닌가? 노코멘트다.

언젠가 부터 진리라는 멍청한 것을 찾아 헤맨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걸 찾으면 건축이라는 매개체로 더 많은 사람들의 삶에 가까이 다가 갈 수 있다고 심하게 착각을 하며 시작된 방황. 어쩌면 생각보다 빨리 끝이 날지도 모른다. 
하느님이 말씀하신 절대 진리 또한 상대적이라는 수 많은 책의 구절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내가 마그리트를 좋아하게 된 이유도 그의 페인팅안에 숨어 있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해석과 재해석의 다양성에 이끌렸던것이 아닌가? 철학과 진리는 상대적이라는 걸 알면서 그  다양한 수 만가지중에 하나는 진짜일거라는 희망에 베팅했다. 

현실의 벽이 너무 높다는 친구의 말에 그러면 술김에 해딩이라도 해보자 했다. 
하지만, 결국 그 해딩도 본인의 머리통만 두 동강 낼 것이다. 이런 현실은 가끔 실없이 웃게 만든다. 그리고 나는 또 걷는다. 하하하


8/7/08

칼장수

동네동네 다니며 칼을 팔고다니던 그 아낙네 들을 기억하는가?
말끔한 외모에 쫙 빼어 입은 정장, 따뜻한 미소.
뭐 여기서 직업에 대한 귀천을 따지자는 것은 아니다.
나는 아직도 세상의 더러운 물을 덜 먹어서 그런지 모르지만(칼장수들에게 칼 날라 오는것 아닌가),
얼마전 칼장수가 된 기분을 혹독히 맛보고 닭똥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졌던 날을 기억한다.
이제야 허심탄회하게 포스팅하는것도 아마 내 가슴이 받아들이는데 시간이 걸렸던듯.

가기로한 회사에서 일이 지연되는 관계로 멍하니 넋만 놓고 있을 수 없어 나를 테스트도 해볼겸 몇군데 건축회사에 지원을 했었드랬다. 역시나 나와 색깔이 맞지 않은 곳들은 내내 침묵이었고 그나마 나를 알아봐 줄지도 모를꺼라는 한 회사에서 인터뷰 요청이 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짐차에 실지 않고 들고온 한부의 포트폴리오를 가지고 회사를 찾아갔다. 

들어가자마자 '방긋'....온통 여자들을 보고 놀랜 가슴을 추스리느라 표정관리가 안되었을터이다. 
이런게 반사신경인가? 눈 씻고도 찾아 볼 수 없는 남자의 존재에 왜 나는 이렇게 당황하는가? 일을 하고 싶었던게 아니라 남자를 찾고 싶었던건가? 여자만 있는 사무실에서 난 살아 남을 수 없단 생각과 함께 불안감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어떻게든 이쁘게 보이지 않으면 안된단 생각에 그들과 같이 '방긋' 울어줬다. ㅜㅜ

10여분 기다려 만난 그 회사의 오너는 나를 또 한번 놀라게 했다. 일본계 미국인으로, 동양인이 아무리 어려 보인다 한들 그녀는 내 나이 남짓되어 보였다. 아 쓰바...난 여태 부모 테두리에서 호위호식하며 무엇을 한걸까 하는 자괴감.
타다오 안도(tadao ando)와 프로젝을 함께한 후 급상세를 타고 있는 그녀. 역시 인생은 인맥인가하는 씁쓸한 생각이.( 그래 나는 아직도 실력이면 다 된다는 멍청한 생각을 한다.) 내 작업에 대한 얘기로 이어지면서 그녀는 달리 보였다. 내 작업 하나하나에 열의를 갖고 궁굼해 하는 그녀. 오랫만에 카리스마를 느낄 수 있는 사람을 만난기분이었다. 왠만해서는 주눅들지 않는 내가 '아 이 여자는 좀 강하다'라고 느낄정도로... 그러니 어린 나이에 여기까지 올 수 있겠지.
그렇게 장장의 3시간을 내 작업과 논문을 설명해가며 인터뷰 한적은 처음 이었던 것 같다.
나도 나지만 남의 작업을 3시간 들어줄 수 있는 그녀가 대단하다. 샐러리와 비자 문제를 상의하면서 역시나 나는 보기좋게 무너졌다. 그렇게 프로패셔널 하지 않을 수가 있단 말야??!! 

미국이란 나라에서 나는 마이너리티이다. 다른 피부색과 머리, 문화적 괴리감, 언어 뿐만이 아니라도  취업에 있어 비자 문제는 남들보다 몇배를 잘 할 수 있단 보증 있어도 결코 쉽지않다. 강자 앞에서 강하고 약자 앞에서 약해야 된단 누구의 말은 귀담아 들은적도 없듯이 그녀 앞에서 이래저래 비굴해져야 했던 나를 기억한다. 

문을 닫고 돌아서서 나올때까지도 괜찮았던 것 같다. 
그렇게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면서도...
빌딩문을 열고 빽빽한 뉴욕을 만나는 순간에 이성적사고의 끈이 풀어졌다.
한 발자국도 걸어지지가 않았다. 눈 앞이 자꾸만 흐려져 수 없이 감빡거려야만 했다. 

무엇이 그렇게 분했을까?  소중히 가방에 넣어간 나의 포트폴리오는 칼세트가 되고 작업 하나하나는 그 칼들이 되어 난 그녀에게 열심히 내 칼들은 이런 기능 저런 기능 있으며 다 같이 구입하면 가격도 저렴하고 어쩌고 저쩌고..... 자존심? 이 그렇게나 중요한가? 
나도 그저 그렇게 곱게 자라난 유학생들 중에 하나인가? 이런 작은 시련따위에 그토록 자존심이 상할 일인가? 그날은 넌 아직도 멀었다는 고모의 말이 매정하게 들렸다.  꼭 가난을 맛보고 굶주린 것만 고생이야. 우리시대 젊은이들은 굶주림과는 다른 또 다른 복잡한 고민이 있다고요. 이런 생각을 했었더랬는데...역시 고모 말이 맞았다. 하루만 지나고 돌아보니 난 정말 아직 멀었다. 부모덕에 남들앞에 아쉬운것 없이 자란 난 그런 작은 것도 참을 수가 없는 것이다. 돌이켜보니 스티븐씨를 만나고 나온날도 나는 다리가 후들거렸고 며칠을 심하게 앓았다. 자존심과 자신감, 자존감 무엇이 나를 만드는가? 얼마만큼 데이고 아파야 세상을 알 수 있을까? 서른이란 나이면 왠만한 일에는 웃어 넘길 수 있는 내가 되어 있을 줄 알았는데...
쇼펜하우어 선생님이 돌아가시면서 본인도 모른다고 다만 너희들은 내책을 수 없이 되뇌이며 찾길 바란다는 책임감 없는 유언이 진리일까? 

한없이 작고 낮은 내 자신에 채찍을 더 들어야 할 것 같은데 그렇다면 요 밑에 나를 사랑하는 법은 언제 알게 될것인가???


 



8/6/08

보행기

살아가면서 든든한 내 편이 있다는 것 만큼 복 받은 일이 있을까.
40등 성적표를 들고와도 언젠가는 1등을 할 수 있다는 걸 믿어줬다.  
대입을 보기 좋게 실패했을때도 다음에 잘하면 된다 했다. 
본인은 가슴이 내려 앉을 듯 걱정됐을지 모르나 나는 아직도 그가 얼마만큼 속이 상했는지 알지 못한다. 내가 본 모습은 인자한 웃음 뒤에 강한 신뢰였으니까. 

내 편이 없어진 어느 날인가 나는 그 힘이 얼마나 큰 것이었는가를 깨닫게 되었다.
그가 없는 세상은 예전과는 조금 다르다. 내가 이 길이라고 해도 무조건 믿어주는 후원자가 없어 가슴이 먹먹해졌던 때가 꽤나 있었다. 그럴 때마다 주저앉고 싶었을텐데 그  기억들이 다시 걸을 수 있게 해주었겠지. 온 세상이 아니라고 해도 한 사람 내편.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나를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한다. 생각해보니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나는 나를 가장 사랑해' 이렇게 자신 있게 말하면서도, 정작 내가 얼마만큼 나를 아끼고 사랑해 주었는지 생각해 보니 멍해졌다. 열심히만 해내는 삶이 나를 위한 길이라 생각했는데 정말이지 나는 나를 힘들게만 했던 것 같다. 나를 사랑하는 법이 익숙해지면 그때는 너도 더 사랑할 수 있겠지. 

보행기가 없어도 혼자 걷는 법을 알게 해주는 세상이 쓰지만 달다. 




8/5/08

마주서야 보인다

가슴에 꽃을 달아주기 위해서는 서로 마주서야 한다.
가장 친밀한 거리에서 서로의 눈길을 보내고
그가 기뻐하는지 입가를 엿보아야 한다.
그건 첫 포옹만큼이나 설레고
가슴 떨리는 일이다. 

-신경숙의 <자거라, 네 슬픔아> 중에서-

나는 혹은 당신들은 마주설 수 있는 용기가 얼마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