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08

칼장수

동네동네 다니며 칼을 팔고다니던 그 아낙네 들을 기억하는가?
말끔한 외모에 쫙 빼어 입은 정장, 따뜻한 미소.
뭐 여기서 직업에 대한 귀천을 따지자는 것은 아니다.
나는 아직도 세상의 더러운 물을 덜 먹어서 그런지 모르지만(칼장수들에게 칼 날라 오는것 아닌가),
얼마전 칼장수가 된 기분을 혹독히 맛보고 닭똥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졌던 날을 기억한다.
이제야 허심탄회하게 포스팅하는것도 아마 내 가슴이 받아들이는데 시간이 걸렸던듯.

가기로한 회사에서 일이 지연되는 관계로 멍하니 넋만 놓고 있을 수 없어 나를 테스트도 해볼겸 몇군데 건축회사에 지원을 했었드랬다. 역시나 나와 색깔이 맞지 않은 곳들은 내내 침묵이었고 그나마 나를 알아봐 줄지도 모를꺼라는 한 회사에서 인터뷰 요청이 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짐차에 실지 않고 들고온 한부의 포트폴리오를 가지고 회사를 찾아갔다. 

들어가자마자 '방긋'....온통 여자들을 보고 놀랜 가슴을 추스리느라 표정관리가 안되었을터이다. 
이런게 반사신경인가? 눈 씻고도 찾아 볼 수 없는 남자의 존재에 왜 나는 이렇게 당황하는가? 일을 하고 싶었던게 아니라 남자를 찾고 싶었던건가? 여자만 있는 사무실에서 난 살아 남을 수 없단 생각과 함께 불안감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어떻게든 이쁘게 보이지 않으면 안된단 생각에 그들과 같이 '방긋' 울어줬다. ㅜㅜ

10여분 기다려 만난 그 회사의 오너는 나를 또 한번 놀라게 했다. 일본계 미국인으로, 동양인이 아무리 어려 보인다 한들 그녀는 내 나이 남짓되어 보였다. 아 쓰바...난 여태 부모 테두리에서 호위호식하며 무엇을 한걸까 하는 자괴감.
타다오 안도(tadao ando)와 프로젝을 함께한 후 급상세를 타고 있는 그녀. 역시 인생은 인맥인가하는 씁쓸한 생각이.( 그래 나는 아직도 실력이면 다 된다는 멍청한 생각을 한다.) 내 작업에 대한 얘기로 이어지면서 그녀는 달리 보였다. 내 작업 하나하나에 열의를 갖고 궁굼해 하는 그녀. 오랫만에 카리스마를 느낄 수 있는 사람을 만난기분이었다. 왠만해서는 주눅들지 않는 내가 '아 이 여자는 좀 강하다'라고 느낄정도로... 그러니 어린 나이에 여기까지 올 수 있겠지.
그렇게 장장의 3시간을 내 작업과 논문을 설명해가며 인터뷰 한적은 처음 이었던 것 같다.
나도 나지만 남의 작업을 3시간 들어줄 수 있는 그녀가 대단하다. 샐러리와 비자 문제를 상의하면서 역시나 나는 보기좋게 무너졌다. 그렇게 프로패셔널 하지 않을 수가 있단 말야??!! 

미국이란 나라에서 나는 마이너리티이다. 다른 피부색과 머리, 문화적 괴리감, 언어 뿐만이 아니라도  취업에 있어 비자 문제는 남들보다 몇배를 잘 할 수 있단 보증 있어도 결코 쉽지않다. 강자 앞에서 강하고 약자 앞에서 약해야 된단 누구의 말은 귀담아 들은적도 없듯이 그녀 앞에서 이래저래 비굴해져야 했던 나를 기억한다. 

문을 닫고 돌아서서 나올때까지도 괜찮았던 것 같다. 
그렇게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면서도...
빌딩문을 열고 빽빽한 뉴욕을 만나는 순간에 이성적사고의 끈이 풀어졌다.
한 발자국도 걸어지지가 않았다. 눈 앞이 자꾸만 흐려져 수 없이 감빡거려야만 했다. 

무엇이 그렇게 분했을까?  소중히 가방에 넣어간 나의 포트폴리오는 칼세트가 되고 작업 하나하나는 그 칼들이 되어 난 그녀에게 열심히 내 칼들은 이런 기능 저런 기능 있으며 다 같이 구입하면 가격도 저렴하고 어쩌고 저쩌고..... 자존심? 이 그렇게나 중요한가? 
나도 그저 그렇게 곱게 자라난 유학생들 중에 하나인가? 이런 작은 시련따위에 그토록 자존심이 상할 일인가? 그날은 넌 아직도 멀었다는 고모의 말이 매정하게 들렸다.  꼭 가난을 맛보고 굶주린 것만 고생이야. 우리시대 젊은이들은 굶주림과는 다른 또 다른 복잡한 고민이 있다고요. 이런 생각을 했었더랬는데...역시 고모 말이 맞았다. 하루만 지나고 돌아보니 난 정말 아직 멀었다. 부모덕에 남들앞에 아쉬운것 없이 자란 난 그런 작은 것도 참을 수가 없는 것이다. 돌이켜보니 스티븐씨를 만나고 나온날도 나는 다리가 후들거렸고 며칠을 심하게 앓았다. 자존심과 자신감, 자존감 무엇이 나를 만드는가? 얼마만큼 데이고 아파야 세상을 알 수 있을까? 서른이란 나이면 왠만한 일에는 웃어 넘길 수 있는 내가 되어 있을 줄 알았는데...
쇼펜하우어 선생님이 돌아가시면서 본인도 모른다고 다만 너희들은 내책을 수 없이 되뇌이며 찾길 바란다는 책임감 없는 유언이 진리일까? 

한없이 작고 낮은 내 자신에 채찍을 더 들어야 할 것 같은데 그렇다면 요 밑에 나를 사랑하는 법은 언제 알게 될것인가???


 



5 comments:

romantika said...

네말이 다 맞아 고모님말씀도.
남들한테는 10번이고 20번이고 노력하라고 도전하라고 쉽게 말할 수 있지.
본인은 그 한번의 좌절도 처절하고 쓰라릴뿐이야. 그래서 나는 그까짓 노력 가지고 벌써 좌절이냐는 말을 들으면 더 화가 치밀었지. 그러면서도 온실의 화초같은 나에게도 화가났지만 눈물이 흐르는건 막을수 없잖아. 내가 결코 남들에 못지 않다고 믿고 강단에 올라가서 상을 받을때도 난 차별이 너무 억울했고. 그래픽잡지에 동양인인 내 포스터가 실리지 않았을때도 억울했고. 남들이 다 칭찬해도 평범한 학교조차 거부당하는게 억울했어. 이렇게 억울한 일만 잔뜩 있는데도 구질구질하게 남아있는건 힘들면 힘들었을수록 나중에 받는 상이 값지다는걸 알기 때문이겠지. 나도 갑자기 다 복받쳐서 길게 남겨버렸네.
하여간 무사히 극복한거 축하해.
하루 하루 멋진 디자이너가 돼!

romantika said...

아니다 그래도 구질구질하게 남아있는건 성공이고 뭐고 일단 포기가 안되는걸 어떡해. 큭큭

sara said...

맞아. 일단 포기가 안된다고. ㅎㅎㅎ

람람 said...

ㅜㅜ
난 너희들 보며 하루하루 반성하고 또 반성하고 나도 꼭 잘되야지...막이래.

sara said...

람람님,

우리도 언니 보고 힘 받아요.
언니의 뽀얀피부와 력셔리한 머릿결...ㅎㅎ
언젠가 우리 모두 숲에서 재회하여 차한잔 할 날을 고대해요!!